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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6년은 광주민주화운동의 아픔과 복수를 그린 만화 원작으로 그날 가족을 잃은 곽진배(진구), 심미진(한혜진), 권정혁(임슬옹) 또 다른 사연을 가진 김갑세(이경영), 김주안(배수빈) 이들이 영화 26년의 주인공이다.
사연이 많았던 제작과정 이야기
영화 26년은 영화화 구상 당시 제목은 웹툰 연재할 때로부터 3년이 지나 제목이 29년이라고 바뀌었다가 다시 26년으로 결정되고 대형 투자사의 투자 취소로 인해 무기한 연장이 되는 등 제작과정만 5년이 걸렸으며 캐스팅도 바뀌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으나 영화 제작을 위한 후원을 받으며 '제작두레'라는 사이트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투자금을 모으기 시작하여 1만 5천 명의 회원과 35명의 개인투자자의 힘을 모아서 만든 영화이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역사와 관련하여 영화를 제작하기까지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점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뒤늦게 라도 영화로 만든 것이 대단하면서 존경스럽고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그 사람 때문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인해 어린 학생부터 수많은 젊은 청년, 어느 아이의 아빠 그리고 임산부까지 무고한 시민들을 잔혹하게 희생시킨 그 사람이 민주와 운동 무력 진압을 정당화하는 말을 하고 국가의 추징금 징수에는 본인 전 재산이 29만원 밖에 없다고 말하는 그 사람 때문에 이 영화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보안업체 대기업 회장 김갑세와 그의 비서 김주안은 그 사람을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하기 위해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유가족 곽진배, 심미진, 권정혁 세 사람을 불러 모은다. 광주건달 곽진배는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아버지를 잃고 그 충격으로 어머니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 사람만 보면 발작을 일으키며 정신적으로 이상이 생겨 힘들게 살았던 그는 무식한 전라도 깡패이자 조직원으로서 조직 이탈을 감행하며 계획에 동의한다. 영화 속 진배를 보며 많이 웃으면서도 슬픈 장면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 전역 후 군복을 입은 아들을 계엄군으로 착각한 어머니가 휘두른 칼에 눈과 이마를 찔리면서도 어머니를 꼭 안아주는 장면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국가대표 사격선수이자 착한 딸이었던 심미진은 이쁘고 앞을 보고 씩씩하게 강하게 살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이름을 짓다 그 어머니가 우연히 창문을 뚫고 날아온 총탄으로 죽게 되자 원망과 증오심으로 매일 술만 마시는 아버지가 그 사람 집 앞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아버지를 생각하며 홀로 시내 한복판에서 그 사람을 저격하다가 실패하고 부상을 입는다. 이때 심미진의 개인행동으로 인해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다. 서대문 경찰서 교통계 권정혁은 당시 광주를 점령했던 계엄군을 피해 누나와 함께 달아나던 중 계엄군이 쏜 총탄으로 누나를 잃고 혼자만 도망치며 살아남은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경찰관으로 교통신호를 통제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김갑세의 아들이자 비서 김주안은 계엄군의 의해 잔혹하게 죽은 부모님을 대신에 김갑세가 아들로 받아들이고 잘 키웠으며 그 사람에 대한 분노는 끝없이 존재한다. 그 사람에 대해서 치밀한 작전과 계획을 세운다. 당시 계엄군이었던 김갑세 회장은 그 사람에게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기 위해 5.18 희생자 유가족 자녀들을 모으고 계엄군이 되어 사람을 죽인 죄책감에 사로잡혀 좌절하며 고통스럽게 살아온 26년을 보상받기 위해 모든 걸 준비한다.
민주주의를 위한 항쟁, 광주민주화운동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목숨을 잃고 18년의 유신독재가 막을 내리며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하였지만 전두환을 비롯한 군인들이 무력을 앞세워 정권을 차지해 버렸다. 시민들과 학생들은 민주주의를 원한다며 군인들은 물러가라 전국 곳곳에서 군인들의 정치권력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전남대학교에서 학생들이 모여 계엄해제를 요구하며 시위를 하는 중 1980년 5월 광주에 공수부대 군인들이 학생들과 사람들을 몽둥이로 잔인하게 때리고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을 데려가고 이것을 본 광주시민들은 놀라움과 분노를 감출 수 없어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공수부대에 맞섰다. 계엄군은 헬기에서 기관총을 쏘기도 하고 군인들이 일반시민들에게 총을 쏘기 시작했다. 화가 난 광주시민들은 도청 앞에 모여 한 목소리로 외쳤다. 군인들은 물러가라, 살인자를 처벌하라 그런데 갑자기 사방에서 총알이 날아들어 순식간에 흘린 피로 붉게 물들이며 시위 현장 밖에서도 아무 죄 없는 시민들이 죽음을 당하고 남편을 기다리는 임산부를 총을 쏴서 사살한 경우도 있었고 매복한 군인들이 학생들이 탄 버스를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해 죽기도 했다. 결국 광주민주화운동은 신군부 세력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되고 말았다. 현대사의 비극이자 한국 민주화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신군부의 불의에 맞서 싸우신 희생자분들께 감사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하여 끝까지 싸워주신 많은 희생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유가족분들 또한 얼마나 많은 상처와 고통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셨을까? 어떻게 하면 가슴 아파하지 않으실까? 아무런 도움을 드리지 못해 마음이 죄송스럽고 만약에 우리 가족이 그런 상황이 있었더라면 나는 너무 억울하고 당시 신분부 세력에 대해 많은 증오와 불신이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광주민주화운동을 통해서 우리나라 국민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의지를 보여주었고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